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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한 사마리아인


글쓴이: 김양규

등록일: 2018-01-02 10:54
조회수: 181 / 추천수: 44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강도만난 나그네와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어떤 사마이라인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이웃을 보고 피해갔다.
아마 바빴을게다.
빨리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고,
또 빨리 가서 제사드리는 일들을 도와야했기 때문일게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피해갔던 것일까.

하지만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에게 다가가 보살펴주었다.
필요를 따라 공궤해주었고 살려주었다.

아마 바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가서 드려야 할 제사도 없었고,
도와야 할 제사드리는 일들도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마 시간이 남아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아니,
시간이 아니라 돈의 개념에서 볼 수도 있겠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데에는 시간뿐아니라 돈도 든다.
얼마나 들지도 모르며 막대하게 지출하게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돈지출에 대한 각오도 있어야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마음은 있지만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와 돈의 문제에 걸리기 때문이다.
시간과 돈에만 자유한다면 누구든 선한 사마리안이 되지못할 이유가 어딨을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깊이 묵상해보면 거리의 문제도 나온다.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안은 어떤 환난당한 자를 찾으려고 굳이 먼길을 찾아왔던 것이 아니다.
어떤 특별한 선한 일을 행하려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중도 아니었다.
그는 그냥 길을 가던 중이었고 길에서 만난 환난당한 이웃이 있길래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미스테이크를 범한다.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특별한 이벤트를 펼치려 한다.
단기선교를 간다든지, 해외봉사를 간다든지, 아니면 장기선교를 간다든지 ..
이런 이벤트를 해서 거기에 가서 거기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도우려고 한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
지금 바로 내옆에 있는 사람들,
나의 도움이 필요한 갑돌이와 갑순이에게는 냉담하다.
선한 일이나 선교나 자비를 행하는 일은
특별한 계획을 세워 특별한 곳에 가서 특별한 날에 하는 이벤트지
그게 일상에서 매일매순간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는 자연스런 일상이 되질 못한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바는 무엇일까.
특별한 이벤트일까. 행사일까.
아니면 일상에서 소리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당연한 일처럼 감당하는 것일까.

크리스천치고 선한 사마리탄의 비유를 모르는 사람도 없고,
그 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없으리라.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보인다.
새해에는 좀 다르게 살고싶다.
          
김동준   2018-01-02 18:53:13 [삭제]
귀한 글 감사합니다 평상시 이웃을 돌볼 수 있는 제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김양규   2018-01-03 10:43:18
김동준님 반갑습니다.
멋지고 감사할꺼리가 많은 한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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