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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성과 인성


글쓴이: 김양규

등록일: 2018-02-06 11:06
조회수: 109 / 추천수: 2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생기는 심각한 문제의 90퍼센트는
영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성의 문제다.

영성이 풍성하면 인성이 영성에 갇히지만
영성이 빈약하면 영성이 인성에 갇힌다.

우리가 영성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문제들이
실은 영성이 아니라 인성의 문제가 많다.
인성이 잘못됐기에 영성이 찌그러드는 일들이 참 많다.
건강한 영성은 인성을 넉넉히 품어야 하는데
영성이 허약해서 인성에 품김을 당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사역에 너무 바빠
영성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던데
영성이란
예수님 닮은 성품이다.

영성없이도 사역할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힘만 들고 땀만 나고 돈만 들고... 욕만 얻어묵는다.
          
김동준   2018-02-06 14:35:46 [삭제]
마지막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는 아직 부족하여서 특별히 교회에서 하는 일이 없는데

제 부족한 성품을 바라볼때 마땅한 것 같아요
김양규   2018-02-06 14:38:16
감사합니다. 영성을 충분히 계발하여 인성을 품어내도록 하십시다. 샬롬
김동준   2018-02-07 00:41:18 [삭제]
위 글을 읽고 "건강은 성품에 갇힌다"라는 굿티비 강연 영상이 생각이 나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신실'하다고는 하지만, 성품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참신앙의 모습이 아닌, 종교적 열심에 따른 '외형적 신실'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참된 신앙은 성품으로 이어져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낸다고 믿습니다.(저는 종교적 열심으로 인하여 한때 '신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성품의 변화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참된 신앙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성품이 건강과 연결된다는 것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두 경우의 사람이 떠올랐는데요. 하나님을 의존하는 겸손한 심령을 지닌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아를 의존하는 심령을 지닌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가령 두 사람이 어느 한 작업을 착수하다가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전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 상황 가운데서도 평강을 누릴 수 있는 반면, 후자는 초조함과 염려와 스트레스에 사로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와 반응이 날마다 누적된다면, 전자의 사람은 신앙이 더욱 깊어지고 또한 건강도 유지하게 될 것이지만, 후자의 사람은 스트레스나 염려와 같은 '호르몬'적 반응으로 인해 마음이 무너지고 몸도 무너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을 바라볼 때, 단순히 병적인 증상만을 바라보고 몸을 치료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래하게끔 한 영혼과 성품을 '건강'하게 치료할 수 있도록 성경적인 한의학 처방을 해야하고, 하여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켜야만 온전한 치료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에 원장님께서 목사가 되지 못 한 것에 대한 글을 남기셨는데... 저는 위와 같은 생각을 해보면서 참된 '한의사'는 목회적인 소양도 갖춰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몸을 잘 고치는 실력을 갖추는 의사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치료는 영적인 치료도 동반되어야 하기에..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평소 성경말씀을 늘 묵상하고,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체현되어 알게 된 '산 지식'을 전할 때에만 가능하기에... 하나님이 원장님을 그 자리로 부르셔서 함께 하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봅니다.
김동준   2018-02-07 04:18:47 [삭제]
반응을 보면 안다.. 라는 영상을 필기를 하면서 보았습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필기한 내용을 토대로 제가 떠올랐던 내용들을 글로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이 영상을 보면서 떠오르는 여러 성경말씀이 있었는데, 우선은 다음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장 19-20절

왜냐하면 말은 그 사람을 설명할 때 10%를 보여주고, 인격이 60%, 반응이 30%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 성경말씀에 기초하여 '반응'을 잘 하는 것이 '능력'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나쁜 자극에 작게 반응하고, 좋은 자극에 크게 반응합니다.
건강하지 못 한 사람은 나쁜 자극에 크게 반응하고, 좋은 자극에 작게 반응합니다."

예컨대,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 한 사람이 함께 식물원에 갔을 때, 건강한 사람은 그 식물들을 바라보면서 경이로움에 감탄하면서 그것이 가리키는 영광의 궁극적인 실체이신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짓기 전에 세상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셨던 반응일 것입니다. 반면에, 건강하지 못 한 사람은 미지근한 반응을 하면서 그 아름다운 식물이 가리키는 영광의 실체인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반응을 하지 못하게 되는 셈입니다.

저는 이 법칙이 영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았습니다.
성경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기뻐하고 찬양하여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러한 '반응'이 나오는 반면, 영적으로 죽어있는 맹인과 같은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무미건조한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인류 가운데 가장 나쁜 반응을 감당했던 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십자가를 감당하는 가운데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아주 나쁜, 그리고 큰 '자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절망하지 아니하시고, 당장 천사를 불러와 그분의 권세를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용서와 인내와 친절이라는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쁜 자극을 잘 감당하셨던 좋은 예이지만, 우리는 뉴스기사를 통해서 나쁜 자극에 크게 반응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편의점에서 말 한마디에 빈정이 상했다고 살해하는 사람..과 같은 뉴스기사를 보면서 우리는 어안이 벙벙합니다.

한편, 우리의 자율신경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있습니다. 교감신경은 초조, 긴장을 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부교감신경은 이완과 안정을 시키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사람은 늘 초조하고 긴장만 해서도 안 되고, 늘 이완과 안정만 되어서도 안 되고, 건강한 사람은 이 두 신경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사람입니다. 한의학에서도 건강한 사람은 음적으로나 양적으로 균형을 이룬 사람이 건강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한의학적인 치료는 항상 균형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즉, 신경과학으로 보나 한의학으로 보나 균형이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봤을 때도 역시 균형이 중요합니다. 신앙의 음적인 성격을 띄는 것으로 회개하고 금식하고 울부짖는 것이 있다면, 양적인 성격을 띄는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한 신앙은 둘 중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둘 다가 조화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사실은 건강한 신앙 자체가 균형을 이룹니다. 이는 건강한 신앙이 갖춘 신비스러운 조합의 결과물입니다. 건강한 신앙인은 근심하는 자 같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장 8-10절

우리는 '점잖다'라는 말을 하면서 그것이 성숙한 사람의 특징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좋은 것에 크게 반응하는 사람은 뭔가 미성숙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에 크게 반응하는 그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의 어린아이와 같은 큰 반응을 보고 '점잖지 못 하다'고 업신여긴 미갈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사무엘서 6장...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반응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전해지는 어떤 자극에 반응할 때, 그것을 평소 건강하게 반응하기를 힘쓰는 사람은 진정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말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날마다 분투해야 습득될 수 있는 하나의 능력이자 습관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참된 균형을 이루어, 참 신앙과 건강을 갖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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